동네 아저씨같은 재벌 회장님 !!
구본무 회장을 만나는 사람들은 몇 가지 행동에 놀란다.
첫째, 굴지의 그룹 회장이면서도 약속시간에 항상 먼저 와 있다는 점이다.
보통 구 회장은 공식적인 약속이든, 사적인 약속이든 정해진 시간보다 20분가량 먼저 온다.
전경련 회의도 그렇고 개인적인 약속도 마찬가지다.
둘째는 그를 처음 만난 사람들은 그가 건네주는 명함을 받으면서 놀란다.
어떤 이유에서인지 모르지만 우리나라 재벌 총수들은 명함을 주지 않는다.
30대 그룹은 대부분 그렇고, 그 밖에 있는 중견 그룹도 그런 경우가 종종 있다.
하지만 4대 그룹에 속하면서 한국 재계를 대표하는 사람 중 하나인 구 회장은 자신의 명함을 꼭 직접 건네준다.
“이거 뭐 별 쓸 데는 없는 겁니다”라는 말과 함께. 마지막으로 그와 만나고 나서 떠나는 모습에서 놀란다.
으레 그렇듯 그룹 회장이라고 하면 외부 약속에 최소한 2~3명의 비서는 데리고 나올 것으로 예상하기 쉽다.
하지만 구 회장은 특별히 보좌진이 필요한 약속이나 미팅이 아니면 혼자 나온다.
이 때문에 약속이 끝나고 돌아갈 때도 직접 휴대전화로 기사에게 전화를 해 차를 부른다.
수행비서가 없어 한번은 호텔 앞에서 똑같은 종류의 남의 차 문을 열고 탄 적이 있을 정도다.
이 정도만 보더라도 구 회장이 얼마나 권위주의와 먼 사람인지 알 수 있다.
한국 재계에서는 이런 회장이 흔치 않다.
어떤 회장은 자기 차 앞뒤로 경호원 차를 대동하기도 하고, 어떤 회장은 심지어 경찰의 콘보이를 받는 경우까지 있다.
또 하나의 특징은 구 회장이 만나는 사람들을 편안하게 해준다는 점이다.
어렵거나 정제된 이야기를 하기보다 사투리가 섞인 일상적인 이야기로 좌중을 웃음으로 이끈다.
공식 석상에서 연설을 즐기는 타입은 아니지만 사석에서는 다양한 유머로 좌중을 편안하게 한다.
구 회장과 친한 재계 관계자는 “골프나 비공식적인 회식 자리에서는 상대방을 편안하게 해줘 대그룹 회장과 함께 있다는 생각이 안 들 정도”라고 했다.
사석에서는 친화력이 뛰어나지만 공식적인 자리에서는 항상 수줍은 모습으로 앞에 나서길 꺼린다.
전경련 회의나 대통령이 주최하는 재계 총수 모임에서도 구 회장은 항상 사진의 가장자리에 서 있거나 때로는 저 멀리 뒤에 서 있어 쉽게 찾을 수 없다.
그 때문에 재계 총수 모임에서 찍은 사진 중에는 정몽구 현대차 회장이나 최태원 SK 회장이 구 회장의 팔을 잡고 앞이나 가운데로 이끄는 장면을 흔히 볼 수 있다.
구 회장이 즐기는 취미는 대부분 자연과 관계가 있다.
싱글로 알려진 골프는 물론 박사 수준의 지식을 갖고 있는 탐조(探鳥), 여기에 이끼공원까지 만들 정도로 자연에 관심이 많다.
그리고 관심을 넘어 전문가 뺨치는 수준의 지식을 갖추고 있기도 하다.
새 박사로 유명한 윤무부 교수도 구 회장의 새에 대한 지식을 인정한다.
구 회장 스스로도 “날아가는 새 중 150종 정도는 맞힐 수 있다”고 자신할 정도다.
골프장에서도 날아가는 새를 보면 이름을 척척 댄다.
늘 넉넉하고 자연을 좋아한다고 구 회장이 마냥 ‘허허’할 것이라고 생각하면 오해다.
1996년 축구단인 LG치타스를 창단하면서 88서울올림픽 때 호돌이를 디자인한 디자이너에게 축구단 심벌 디자인을 맡겼다.
몇 달 뒤 디자이너가 가지고 온 치타 캐릭터를 보고 구 회장이 디자이너에게 한마디 던졌다.
“치타가 뛰는 거 본 적 있습니까?”얘기인즉 치타가 달릴 때는 다리 모양이 그림과 다르다는 얘기다.
실제 도감을 확인한 후 디자이너는 치타의 다리 모양을 바꿨다.
연설보다 관찰에 능한 구 회장의 면모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것이다.
치타보다 더 자주 보는 사람들에 대해서는 사소한 움직임까지 관찰하고 있음에 틀림없다.